李一萬
1903-08-04 ~ 1954-09-0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鍾淵, 李壹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일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2일 의성군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박영화(朴永和)의 주도로 박영신(朴永新)의 집에서 박영달(朴永達)·배중엽(裵重曄)·배달근(裵達根) 등과 협의하에 추진되었다. 이들은 3월 12일, 200여 개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이날 12시경, 박영신의 집앞에 모인 2백 여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리(洞里)를 시위행진 후,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외치고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때 급보를 받은 의성경찰서에서는 이날 오후 4시, 순사부장과 경찰이 이곳 주재소로 응원 출동하여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펼쳤다. 그는 이때 붙잡혔으며, 이해 4월 17일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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