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潤
1895-09-01 ~ 1943-06-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재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활동하던 이봉규(李鳳奎)의 아들로서 평북 선천(宣川) 신성(信聖)중학 재학시인 1910년 일제가 조작한 소위 '사내정의(寺內正毅) 암살사건'에 관련되어 체포되었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이창식(李昌植)·김용환(金龍煥)·이규엽(李圭葉)·이순구(李順九) 등과 함께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후 부친 이봉규를 따라 만주 왕청문(旺淸門)으로 망명하여 한족회 법무부장과 삼성학교(三成學校) 교장을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후 활동내용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며 1943년 하얼빈(哈爾濱)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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