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天
1913-05-10 ~ 미상·현대
이명·자·호 李牛峯, 李西乙, 李美荊, 劉海, 李德煥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재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시흥(始興) 사람이다. 상해(上海)에 망명 중인 독립운동가 이용환(李容煥)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일찍이 상해에 있는 동명학교(東明學校)를 졸업하였다. 부친의 뜻을 계승할 것을 결심하고 1929년 2월에 화랑제도를 본따 민족의식의 고취와 교양을 목적으로 화랑사(花郞社)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의 연락업무, 임시정부 요인 등의 송영(送迎), 접대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후 다시 상해의 한국소년동맹(韓國少年同盟)을 조직하고 그 집행 위원장에 취임하여 무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한국소년동맹은 남·여 단원이 약 2백여 명으로 독립사상이 투철한 애국애족의 청년들로서 주로 김 구(金九)의 지시를 받았다. 1935년에는 남경(南京)에 있는 중국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독립운동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인천(仁川)으로 입국하던 중 동년 10월 하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1936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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