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載春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재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8일 경북 대구부(大邱府) 남성정(南城町) 장로파 예수교회의 목사인 이만집(李萬集)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만집은 동년 3월 3일경 서울의 이갑성(李甲成)이 파견한 사람에게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대구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협의한 끝에 3월 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에 최선을 다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3시경 시장정(市場町)에는 이미 연락받은 많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만집은 군중 속에서 ‘지금은 한국이 독립할 시기로서 각자가 독립을 희망한다고 외치면 자연히 독립하게 될 것이니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고 역설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리고 군중 800여 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 등의 문자를 적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재춘은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과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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