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賢
1917-02-02 ~ 1997-02-24·현대
이명·자·호 李海平, 李海坪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재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시흥(始興) 사람이다. 1939년 10월 중경(重慶)에서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공작대를 조직하여 전지에 나가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공작대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이다. 그는 동대의 공작조장으로 임명되어 30여명의 대원과 함께 활동하였다. 같은 해 겨울에 공작대는 서안(西安)으로 이주하였으며, 그는 김동수(金東洙)·김천성(金天成) 등 대원 8명과 함께 일선지구인 산서성(山西省) 등지로 파견되어 중국 호종남(胡宗南) 직속의 산서지구(山西地區) 유격대와 합류, 정보 수집, 적정 탐색, 초모 공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산서성(山西省) 장치현(長治縣) 소동구(小東口)를 본거지로 하여 노안성(潞安省) 및 하남성(河南省)의 초작( 炸) 등지로 진출하여 과감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됨에 따라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월환(羅月煥)은 지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이하유(李何有)·박기성(朴基成)·김동수(金東洙) 등과 함께 간부로 임명되었다. 제5지대는 서안(西安)에 본부를 두고 총사령부를 호위하면서 장병들을 훈련하는 임무에 종사하는 동시에 하남성(河南省), 하북성(河北省) 등지로 나가 초모·선전·정보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광복군의 재편성에 따라 제5지대는 광복군 제2지대로 편입되었다. 1944년 4월에는 한미합작훈련인 OSS훈련 무전반에서 교관을 맡았으며 1945년 국내 정진군의 본부요원이 되어 국내 침투공작 활동을 위하여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1963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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