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成
1878-10-25 ~ 1948-03-0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정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4월 14·15일에 걸쳐, 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謨) 등과 함께 와부면(瓦阜面) 일대의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3월 14일 김정하(金正夏) 등과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날 시위군중을 동원하여 송촌리(松村里)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와부면 일대를 행진하였다. 다시 이튿날 이른 아침 송촌리와 부근 동리주민 1백여 명을 송촌리에 모이게 하여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덕소리(德沼里)로 행진하는 등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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