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洙
(1893) ~ 1929-02-1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정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정수는 1911년경 간도로 건너가서 1915년 연변교육연구회를 창립하고 훈춘교육회(琿春敎育會) 총무로 활동하며, 20개의 소학교와 훈춘 황구북(荒溝北) 중학을 세웠다. 1917년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가 전로한족중앙총회(全露韓族中央總會) 간부, 1920년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0년 가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 정경과를 수학하다가, 1921년 학생 제2차 xx사건으로 금고 8월을 받았다. 1923년 귀국하여 1924년 8월 17일경, 서울에서 김연의(金演羲)·이재익(李在益)·김덕한(金德漢)·전일(全一) 등과 함께 조선노동당을 창립하였다. 1924년 11월에 조선노동당에 대한 검거가 벌어지자, 1925년 3월에 김덕한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갔다. 1925년 4월에 북풍회·화요회의 주창에 따라 북풍회·화요회·무산자동맹·조선노동당 사이에서 합동론이 제기되었다. 이정수는 김덕한과 함께 7월에 국내로 돌아와 이에 반대하고, 동년 9월 초순 별도로 ‘노동자구락부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1926년 7월경에 제2차 조선공산당사건과 관련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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