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五
1910-01-23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정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8년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은 평소 민족차별과 모멸적 언동을 일삼던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며 동맹휴학을 벌였다. 당시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정오도 이에 참여하여 근신 처분을 받았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와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光州中學校) 학생들이 광주 역 앞에서 격투를 벌였다. 이를 계기로 평소 민족차별과 식민지교육에 울분이 쌓였던 학생들은 광주 시가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광주공립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全南師範學校)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정오도 이에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이 날의 시위로 많은 한국인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편파적인 일제의 조치에 항거하여 학생들은 다시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11월 12일 이정오는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시작과 동시에 교실을 뛰쳐나와 교문 밖으로 진출하였다. 격문을 살포하고 만세를 부르며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전남사범학교 앞으로 행진하였다. 학생들은 ‘구속학생 석방’, ‘식민지교육 철폐’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아 9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학교에서는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