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儀
1851-08-19 ~ 1933-12-2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정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1896년 제천의진(堤川義陣), 1905년 원용팔(元容八)의진, 1907년 이강년(李康秊)의진 등에 참여하며 지속적으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1895년 11월(음력) 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등은 토적복수(討賊復 )를 기치로 강원도 원주에서 거의한 후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충북 제천에서 진용을 재편성하였다. 이때 이정의도 의진편성에 참여하여 전군장(前軍將)으로 선임되었다. 제천의진은 1896년 2월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을 점령하며 기세를 떨쳤고 '격고내외백관(檄告內外百官)'이란 격문을 관리들에게 보내어 각성을 촉구하였다. 또한 수안보와 가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제천의진에서 활동한 이정의는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안타까워 하던 중 1905년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원용팔의병장이 거의하자 다시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에 나섰다. 단양(丹陽)에서 모집한 포군을 이끌고 영춘으로 이동한 원용팔은 이곳에서 지휘부를 구성하였다. 이때 이정의도 의진에 참여하여 전군장(前軍將)으로 선임되었으나 미쳐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일본군의 공작으로 인해 원용팔이 체포되자 의진은 그만 와해되고 말았다. 분한 마음을 다스리며 시기를 기다리던 이정의는 1907년 이강년의병장이 재거의하자 다시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강년 의병장은 특히 지방민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리에 밝은 이점을 이용해 신출귀몰한 유격전술을 구사하여 의병사에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1908년 2∼4월간에 전개된 용소동전투, 갈기동전투, 백담사전투, 안동 서벽전투, 봉화 내성전투, 안동 재산전투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후기 의병사에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한 이강년의진에서 이정의는 좌종사(坐從事)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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