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潮承
1888-01-2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조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농업에 종사하다가 1916년 4월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청림교(淸林敎)에 입교하였다. 청림교는 “교인으로 전란을 피할 수 있고 조선 독립 후에 관리에 임명될 것이므로 전란 중 양식, 기타의 비용을 각출하여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이처럼 신종교(新宗敎) 청림교는 한국의 독립을 지향했다. 교인 1천여 명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충청남도 공주군 마곡사 부근으로의 이주를 권유하였다. 청림교도는 “전란의 여파는 동양의 조선에도 미쳐 조선인은 재앙을 입었으나, 이 기회를 틈타 국권을 회복하고 조선 독립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따라 이조승도 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17년 2월 체포되었다. 1917년 11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혐의로 태 90도 형을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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