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種世
1916-02-01 ~ 1957-02-10·현대
이명·자·호 李鍾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종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성고등공업학교 입학 당시부터 학교 당국의 조선인 학생에 대한 차별로 점차 민족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1938년 10월 중순경 학교에서 한갑호(韓甲鎬) 등에게 “미나미(南) 총독의 창씨제도는 형식적・선전적・허구적이다. 창씨 하는 것으로 성을 분할하는 것은 조선 민족의 단결력을 파괴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창씨제도를 비판했다. 1941년 6월 하순경에는 지인에게 “일본 패전의 시기를 틈타 조선독립운동을 일으키면 성공은 의심할 것 없다. 나는 과거 수천 년간 조상이 물려준 성을 고쳐 창씨 하는 것은 양심상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노력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3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육해군형법(陸海軍刑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1945년 6월 3일 가출옥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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