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植
1917-09-04 ~ 미상·현대
이명·자·호 李仁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종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종식은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春川公立高等普通學校) 재학시절 민족주의 문헌을 탐독하고 민족주의를 신봉하였다. 더불어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게 되었다. 이처럼 민족의식을 함양한 그는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한 뒤 춘천군 신북면(新北面)에서 서기로 재직하였다. 1936년 8월 이종식은 이홍래(李鴻來), 신영철(申瑛澈), 박우홍(朴禹弘)과 함께 자택인 강원도 춘천군 춘천읍 화원정(花園町)에서 회합하였다. 이때 이홍래가 '현재의 농촌은 극도로 피폐해서 조선 민족은 타락되어 있으므로 민족을 개조해서 그 지위 향상을 꾀해 조선을 독립시켜 장래 세계를 통일하는데 충분한 대민족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찬동한 이종식과 일행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기로 결의하였다. 1937년 9월에는 이종식의 집 뒷산에서 함께 회합하여 '조선민족은 단결심과 희생적 정신이 결여되고 있으므로 조선독립을 위해서는 희생적 정신의 양성이 필요하고, 조선 민족을 현재와 같이 불명예스러운 생활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사리사욕을 초월해야 하고 또 조선 고유의 문화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방안을 협의하였다. 1938년 3월에는 '농촌으로 돌아가 농촌을 경제적으로 부흥시키고, 농민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수양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각자 경성부 소재 조선어학회에서 발행한 한글 잡지를 구독하기로 결의하였다. 1938년 9월 신북면 우두리에 우두산 조양문 부근에서 회합한 이종식 등은 춘천중학교 학생들에게 「조선의 형상」, 「조선 청년이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강연하였고, 이종식 역시 '조선의 농촌은 극도로 피폐해 있으므로 우리들 지식계급은 농촌으로 돌아가 일반 농민에 대해 자급자족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라고 연설하였다. 이들 강연은 모두 민족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당시 현상에서 벗어나 조선의 독립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 후배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상록회(常綠會) 멤버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거나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종식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주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기까지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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