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種赫
1892-08-11 ~ 1935-12-1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馬德昌, 李伯, 李鍾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종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당진(唐津) 사람이다. 1915년 김석원(金錫源)과 같이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중위에 임관되었다가 퇴임하고 귀국하였다. 1924년 4월에는 만주로 건너가서 중국 국민군 제1방면군(馮玉祥部隊)에 입대하여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8월에는 통화현(通化縣)에서 김승학(金承學)·이유필(李裕弼)·이웅해(李雄海)·윤세용(尹世茸)·채 찬(蔡燦)·차천리(車千里)·박응백(朴應伯)·양기하(梁基瑕)·심용준(沈龍俊) 등과 함께 주만육군 참의부(駐滿陸軍參議府)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7년 3월에 참의부 군사부 위원장에 임명되어 대일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28년 2월에는 참의부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어 김승학·차천리 등과 함께 남만의 환인(桓仁)지방에서 무장활동을 전개하다가 봉천(奉天)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29년 4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34년 4월에 출옥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평북 선천(宣川)에서 병사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80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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