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俊根
미상 ~ (193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준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북만주에서 결성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에 소속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7월 길림성(吉林省) 영안현(寧安縣)에서 신민부(新民府) 군정파(軍政派)가 재만한족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韓族無政府主義者聯盟)의 무정부주의 이념을 수용하여 조직하였다. 북만주 일대에서 농촌 자치조직의 건설과 교육활동, 항일무장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선언문(宣言文)에서는 '우리 민중의 생활 향상과 혁명전선의 진전을 도모하는 자주,자치적 생활조직을 기초로 해서 전민중적으로 연합조직을 완성해야 한다'라고 하여 권력의 중앙 집중을 부정하고 자주적 조직의 연합체를 지향하였다. 본부는 영안현 산시역전(山市驛前)에 있었으며, 김좌진(金佐鎭, 위원장), 권화산(權華山), 한규범(韓奎範), 정신(鄭信), 김종진(金宗鎭), 이붕해(李鵬海), 강석천(姜石泉), 박경천(朴耕天), 이을규(李乙奎), 박찬순(朴燦順) 등이 중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1930년 2월 김좌진이 사망한 이후 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의 주력으로 재편성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이준근은 1929년 7월 북만주 해림(海林)에서 김야운(金野雲), 이달(李達) 등과 함께 재만한족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였으며, 한족총연합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