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中彦
1850-03-13 ~ 1910-10-20·조선
이명·자·호 李文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중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북도 안동(安東)군 예안(禮安)면 하계(下溪)리에서 태어났다. 187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급제하고 정언(正言) 지평(持平)을 역임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세상이 혼란해짐을 개탄하고 봉화(奉化)의 임당산(林唐山)기슭에 은거하였다. 1895년 10월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자 안동에서 김도현(金道鉉)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어 전방장(前防將)을 맡았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을 참형에 처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었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단식을 결행해서 1910년 9월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2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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