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振武
(1900-06-21) ~ 1934-05-1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得成, 李肅山, 李聖霜, 李松海, 李晋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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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진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3·1독립운동 직후에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에 가담하였다.1920년 8월 15일 중대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와 신의주역과 신의주에 있는 호텔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불발로 실패하였다. 이어 선천군 약수참(宣川郡藥水站)으로 가서 일경과 그 주구를 사살하는 한편 당시 서울 배재학당에서 재학중이던 김석호(金錫虎)와 협조하여 신의주감옥 여자사무원의 안내를 받아 그 수직청(守直廳)을 습격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1925년에는 정의부(正義府) 제5중대에 소속되어 활약하였으나, 동년 7월 4일에는 김귀진(金貴振)·김승엽(金承燁) 등과 함께 평북 철산군 차련관주재소(鐵山郡車輦館駐在所)를 습격하여 일경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1927년 7월 정의부 제5중대장 김석하(金錫河)의 명을 받고 홍학순(洪學淳)·김봉수(金奉秀)·김치복(金致福)·이원진(李元珍)·장기천(張基千) 등을 인솔하고 국내에 진입하여 구성(龜城)경찰서 조악(造岳)파출소를 습격하여 일경을 사살하였다.동년 8월에는 평북 정주(定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1월에는 평북 신의주 광평면 청수동(廣平面靑水洞)에서 일경 12명과 만나 교전하였다. 1933년 6월 조선혁명군 제5중대 부관으로서 무장활동을 계속하다 체포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애꾸눈'의 지휘관으로 용감무쌍하여 일목장군(一目將軍)이라 불리었으며, 불의를 보면 불같이 노하는 성미이기 때문에 흑선풍(黑旋風)이라 불리기도 하여 그의 이 별명만 들어도 일경과 밀정들은 지레 겁을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도 1935년 5월 18일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2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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