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且文
(1899) ~ 1933-02-2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又文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차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차문은 경북 안동군(安東郡) 일직면(一直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 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안동지방은 전통적인 유교의 사상적 영향이 짙은 곳으로 한말에는 척사위정 (斥邪衛正)의 의병운동이 성하였고, 일제 조선강점 후에는 민족주의의 항일독립 운동이 그 전통을 이루어 온 곳이다. 3·1운동기에도 항일적인 이 같은 사상은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일직면에서는 1919년 3월 21일 오후 10시 일직면 망호동에 사는 이구덕(李九 德) 외 5명이 면민 약 200명과 함께 망호동 동산(東山) 송림간(松林間)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후 망호주재소(望湖駐在所)로 몰 려가 시위하다가 경찰들에 의해 해산당하고 주동 인물 이구덕은 검거되었다. 22일 오후 6시 재차 봉기하였으나 곧 해산당하였다. 이구덕은 3월 31일 대구지 방법원 안동지청으로부터 태형 90도를 받았다. 이 시위로 체포된 이차문은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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