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涉
(1896) ~ 1925-02-0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永實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춘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극단에 가입하여 1921년 밀정 2명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1925년 순국하였다. 중국 임강현(臨江縣)에서 출생하여 장백현(長白縣)으로 이주하였다. 1920년 장백현에서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태극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장백현, 임강현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 김동준(金東俊) 등이 조직하였다. 태극단은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또한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광복단·흥업단(興業團), 대진단(大震團) 등과 연합하여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 음력 4월 10일 이춘섭은 태극단원 한석복(韓石福), 강석환(姜錫煥)과 함께 장백현 팔도구(八道溝) 신판자(新判子)로 가던 도중, 엿장수와 잡화상 차림의 수상한 한인 2인을 만나자 그들을 수색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몸에서 한인 명부가 발견되자, 밀정 혐의로 부근 산중에서 처단하였다. 1924년 음력 2월 23일 평북 후창군(厚昌郡)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24년 10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0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자, 상고하였다. 12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1925년 2월 3일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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