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萬
(1850) ~ 1909-11-20·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치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치만은 전북 임실(任實) 출신으로 1907년 12월 임실에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8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된 임실 출신의 유생 이석용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었다. 이석용은 1908년 9월 성재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였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하고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었다.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공판을 받아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교수되어 순국하였다. 이치만은 1907년 12월 이석용의진에 투신하여 의병 약 50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이석용의 지휘 아래 임실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순사대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法院)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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