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三
1886-11-23 ~ 1961-05-2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원목무의(原木武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치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1일 밤 안성군 양성면 동항리(東恒里) 주민 수백 명이 산위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양성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시위 군중은 주재소와 보통학교에 나아가 만세운동을 펼쳤다. 원곡면(元谷面) 주민 1,000여 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동항리로 들어왔다. 2,000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했다. 시위행렬은 2일 새벽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 불을 질러 서류와 물건을 태워버렸다. 이날 5명이 사망하고 이후 원곡면과 양성면 주민 수백 명이 체포되었다. 이치삼은 양성면 구장리(舊場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4월 10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안성경찰서에서 태(笞) 6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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