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燮
미상 ~ (194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치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2년 4월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 이후, 중국내 한인독립운동단체들은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모든 독립운동단체를 망라한 통일기관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32년 10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이 결성되자,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가입하여 중국과의 연합을 도모하고 독립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1934년 1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서 본부를 항주(杭州)로 옮기고, 광동(廣東)·북평(北平)·남경(南京) 등지에 지부를 설치하자, 박찬익(朴贊翊)·강창제(姜昌濟)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남경지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는 한편, 1935년 7월 한인독립운동 진영의 분산된 항일투쟁 역량을 총집중하기 위해 해외 한족의 독립운동단체들이 모여 유일당(唯一黨) 형태의 민족협동전선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창립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한국독립당을 해체하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중경(重慶)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가 창설되어 독립전쟁이 가시화되어 가자, 이에 가입하여 1945년 6월경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참모처 제3과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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