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榮
(187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치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북면(北面)에서 이윤석(李胤錫)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이윤석은 정흥교(鄭興敎)와 몰래 만나 독립선언서를 제시하고 함께 만세운동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등사한 후 북면 주민들에게 배부하고 동지들의 규합에 나섰다. 이에 이치영과 동지 19명은 이들의 제안에 찬동을 표시하고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하였다. 3월 15일 가평 읍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북면 면사무소 앞에서 집합한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른 후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시위군중은 군청, 보통학교, 금융조합 등으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치영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소하였으나,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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