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仁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태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사람으로 1919년 3월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길주읍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이태인은 단천군 북두일면(北斗日面) 천도교 의사원(議事員)으로 독립선언서의 취지에 찬동하여 길주에서 천도교인들과 상의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3월 12일 길주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태인은 거사 당일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이태인은 1919년 5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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