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鉉
1907-02-27 ~ 1942-05-2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태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그는 호남 유학(儒學)의 거두 간재(艮齋) 전 우(田愚) 계열인 흠재(欽齋) 최병심(崔秉心)의 문하생으로 한학과 유학에 정통하고 우국충절의 기개가 높은 유학자로서 1932년 흠재의 문인들과 함께 경앙계(景仰 )를 조직하였다. 그를 비롯한 경앙계의 계원들은 일제가 강요하던 창씨개명(創氏改名) 반대,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 정오묵도(正午默禱) 거부, 삭발 거부, 일장기게양 거부운동을 주도하며 동포들의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1942년까지 이와 같은 항일활동을 계속하였으나 일경의 감시가 심하여 도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1942년 5월 23일 남원에 소재한 주생(周生) 순사주재소에 자진 출두하여 일제의 침략상과 죄악을 폭로·규탄하였다. 이에 일경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그 자리에서 자결·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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