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亨
(1893-11) ~ 1938-12-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태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은율(殷栗) 사람이다. 1919년 황해도 장연(長連)에서 3·1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이봉직(李奉稙)·백준열(白俊烈) 등과 함께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밀명을 받고 동년 7월 20일경 상해로부터 이륭양행(怡隆洋行) 기선을 이용하여 중국 안동(安東)으로 활동거점을 옮겨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의 임시정부로 보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군자금 모집을 계속하다가 1921년 일경에게 붙잡혀 동년 11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범인은닉 및 제령(制令) 위반으로 징역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그는 1925년 10월 16일 임택종(任澤鍾)·전재도(全在道) 등과 함께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은율군 서은율면 남헌리 이기례(李基禮)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재범(再犯)으로 가중 처리되어 1929년 6월 12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6년을 받고 옥로를 치렀다. 1930년 이후 장연농민학교를 설립하여 가난한 청년들을 무료로 교육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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