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鎬
(1884) ~ (1919-0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태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元谷面)·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유지인사들인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최은식(崔殷植) 등이 주도하여 추진되었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독립만세운동은 처음에는 원곡면과 양성면이 별도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태호는 이날 1,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 사무소에 모여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내에 있는 주재소·우체국·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 경찰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돌아가던,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1,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합류하게 되어,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경찰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양성 우체국으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 외리여수(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융수지(隆秀知)의 집을 파괴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같은 해 5월 경, 일경의 심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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