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宅和
1884-11-11 ~ 1974-03-2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택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 평택(平澤)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가한 후 중국 상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동지인 안구현(安九鉉)·오창선(吳昌善)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뜻을 모으고 독립운동 자금모금 활동을 폈다. 이들은 임시정부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 명의의 독립운동자금 모집의뢰서를 소지하고 모금활동을 하다가 1920년 2월 18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동년 4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