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學松
1900-12-1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학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5월 무렵 중국 봉천성 관전현 하루하(下漏河)에 근거를 둔 청년단 벽파별영에 가입하고, 같은 해 6월 동지 이곽붕(李郭鵬)·이광일(李光日)·최명준(崔明俊) 등과 함께 초산군(楚山郡) 서면(西面) 무학동(舞鶴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듬해인 1922년 2월 무렵 청년단 벽파별영을 탈퇴하고, 중국 봉천성 흥경현(興京縣)에 근거를 둔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음력 12월 동지 대한통의부 제3중대 제3소대 부사로 김창룡(金昌龍)·강득조(姜得祚)·이창선(李昌善)과 함께 초산군 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1927년 1월 28일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면(楚山面) 사기덕동(沙器德洞)에서 초산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7년 12월 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강도’를 이유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12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되었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징역 5년 3월로 감형되었고, 1931년 11월 11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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