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鉉稷
미상 ~ 1931-02-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현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현직은 1927년 5월 22일에 열린 함남 정평군 춘유면(春柳面) 수리조합 총대인회(總代人會)에서 교섭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총대인회는 함경선 신상역 앞 신상(新上)공립보통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대회장 입구에서 경관이 총대인 자격을 심사하자, 일반 지주는 조합 당국자들을 비난하는 가운데 겨우 개회를 선언하였다. 의장은 이 회는 평의원을 선거하기 위하여 소집한 것이니 평의원을 선거하겠다고 하자, 지주들은 본 수리조합이 낙성된 지 5년이 지났으나 아직 1차의 총회도 소집한 일이 없으니 평의원 선거 전에 예산 및 결산 경과 보고를 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합측은 그것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하여 장시간 논쟁이 있었고, 의장과 군수는 폐회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갔다. 이에 지주측은 즉석에서 차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교섭위원 8명을 선정하여 조합 당국에 질문할 것과 정평군과 함경남도 당국에 총회 소집을 진정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1928년 2월 26일, 정평농민동맹(定平農民同盟) 제1회 임시총회에서 신임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어 농민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농민야학을 만들어 일반농민의 문맹을 퇴치하는 동시에 교양운동을 실시하였으며, 무녀(巫女)를 몰아내고,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1930년 1년 동안 경찰서에 신고된 사건이 50여 건이 넘자, 정평경찰서는 1931년 1월 26일 이래 정평농민동맹 관련자들의 검거에 나섰다. 이로 인해 체포된 이현직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심문을 받던 중, 병이 중하여 2월 1일 정평읍내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7시간 여 만에 사망하였다. 이때 취조도 안했고, 잘못이 없다는 가토(加藤) 정평경찰서장은 그의 사인이 담석증으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나, 유족 외 많은 사람들은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듬해 이현직의 1주년 추도식에는 300여 명이 모여 그의 넋을 기렸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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