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鉉
(1881) ~ (192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강서군 성태면 연곡리(星台面 硯谷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기독교 반석교회(盤石敎會) 신도로서 금제면 원장(金祭面 院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 장로 조진탁(曺振鐸)이 1919년 3월 1일 평양(平壤)에서 독립선포식이 거행되고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지자 이에 참가하고 돌아오다 독립선언서 수 매를 가지고 금제면 원장에 있는 교회 지도자를 만나 평양의 독립만세운동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개되었다. 3월 4일 미리 준비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선두에서는 나팔을 불며 그 뒤에는 청년들이 앞장서고 부녀자와 노인들이 따라가며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모락장〔沙川市場〕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밀고에 의해 사전에 탐지하고 기다리고 있던 일군경의 야만적인 발포로 현경묵(玄景默) 등 18명이 그 자리에서 순국하자 격앙된 시위군중은 헌병주재소장인 좌등(佐藤)이 숨어 있는 초가집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가는 것을 붙잡아 살해하였으며 한국인 헌병보조원이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어 살해하였다. 그는 급보를 받고 평양경찰서에서 파견된 일군경에 의하여 4백여명이 검거되었을 때 그중 한사람으로 붙잡혔다. 이 모락장에서의 유혈투쟁은 같은 해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일군경이 교회에 주민들을 모이게 하여 불을 지르고 집중사격을 퍼부어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였던 제암리(堤岩里)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3·1독립운동 유혈참극의 하나이다. 그는 이해 8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방화·소요·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11월 4일 평양복심법원과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6년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1925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0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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