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亨雨
1885-04-3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형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형우는 전북 익산군(益山郡)에서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에 관한 연락이 전주와 옥구 지역을 통해서 익산군의 천도교와 기독교 측에 전달되었다. 천도교구실의 박영진(朴永鎭)은 곧장 교구 임원과 이형우 등 교인들을 모아서 독립만세 시위 계획을 의논하였다. 이때 참여한 다른 교인들은 이중열(李仲悅), 이유상(李有祥), 정대원(丁大元), 유봉유(劉奉裕) 등이었다. 이형우는 독립선언문을 각 지역에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독교 측과도 연락을 하여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당시 천도교인이 많던 익산군에서는 천도교의 기념일인 제1세 교주 최제우(崔濟愚)가 순도(殉道)한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했고, 천도교에서 순도기념식이 끝난 후 오후 9시를 기하여 군내 각면·각리에서 일제히 산 위에 횃불을 들고 그 횃불을 신호로 해서 만세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시위 후 체포된 이형우는 4월 23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상고하였다. 그러나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었다.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20년 2월 1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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