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亨杓
1858-02-16 ~ 1924-12-26·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형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정용기(鄭鏞基)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영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를 강박하여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주권을 제약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우리 민족은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의병운동을 일으켜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형표는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6년 3월 정용기 의병장이 각 고을 포수(砲手) 및 민병들로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을 구성할 때 경북 영천군 담당자로 활동하였다. 을사륵약 이듬해인 1906년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북상할 것을 결심한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은 영천으로 내려가 통유문과 격려문을 각계 각층에 보내어 함께 의병에 참가하기를 권고하고 총 궐기를 촉구하였다. 또한 정용기 의병장은 각 지역별로 인원을 배치하여 의거 진행 계획에 대한 연락을 맡게 하였다. 당시 정용기 의병장 휘하에서 이를 담당하던 사람은 이형표 외에 이수인(李壽寅)·정치석(鄭致錫)·이두규(李斗圭)·정진영(鄭鎭英)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각지의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는 한편 사재를 털어 무기와 군량·군복 등을 의병 진중에 헌납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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