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洪成
1888-12-1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弘承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홍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9월경 중국 집안현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서기로 활동하며 동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밀정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9월경 중국 집안현(輯安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중국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朴長浩), 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이다. 대한독립단은 본부를 유하현에 두고 만주 각 지방에 지단을 설치하여 독립군 편성과 훈련에 주력하였다. 또한 대한제국 말기 의병전쟁 당시 주로 사용했던 게릴라방식의 전투방식을 접목하여 3~4명으로 소규모로 조직된 결사편의대(決死便衣隊)를 국내로 잠입시켜 일본군경과 친일파를 처단하는 한편,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 서기(書記)로 임명된 이홍성은 검찰원(檢察員) 최영순(崔永淳), 단원 채득필(蔡得弼) 등과 함께 1919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집안현 내 삼도구(三道溝), 이마구(二馬溝), 선단구(仙檀溝), 강창구(江倉溝), 착화구(錯華溝) 등지에서 54명으로부터 일화(日貨) 180원, 중국화(中國貨) 168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7일 집안현 착화구 거주 최경태(崔京泰)가 밀정으로 독립단에 가입하였음을 알고 단원 이용규(伊龍奎) 등 10여 명과 함께 그를 체포하여 집안현 태화보(泰和堡) 이마구 부근 산중에서 처단하였다. 1920년 2월 4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소위 살인, 강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8월 16일 출옥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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