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化三
1866-03-15 ~ 1910-01-28·대한제국
이명·자·호 李永煥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화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자초리(紫草里)에 있는 일간 50여 가구의 장정과 의병을 일으켜 맹주가 되어 삼북주재소(三北駐在所)를 습격하고 1906년 3월 군율작전, 비린내 작전 등 수십차례에 걸친 전투를 하였다. 1906년 봄 의병장인 이대극(李大克, 淳植이라고도 함)이 영광(靈光)에서 기병하여 일군을 쳐부수고자 기삼연(奇參衍) 의병진영과 합세하여 기삼연을 맹주로서 추대하고 이대극이 부의병장이 되어 법성포(法聖浦)·무장(茂長)·장성(長城) 등지에서 전투할 때 함께 참전하였다. 1907년 10월 장성으로 회군(回軍)한 좌익군은 기삼연이, 그리고 그는 우익군의 이대극과 함께 어등산(魚登山) 전투를 거쳐 석대산(石臺山)에서 의병진영을 정비하고 휴식하던 중, 기삼연이 패전하여 일본군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1908년 3월 19일 김 준(金準)과 의진을 재편성하여 이대극을 맹주로 추대하였으며, 어화삼(魚化三)을 참모로 하고 이백겸(李伯謙)은 선봉장(先鋒將), 그리고 그는 후군장(後軍將)으로 임명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8년 4월 18일 무장(茂長)·고산(高山)등지에서 일본기병을 쳐부수고 동년 5월 8일에는 불갑산(佛甲山) 연실봉(蓮實蜂) 전투에 참전하였다. 또한 9월 12일 고창(高敞) 석곡(石谷)에서 대혼전을 치르다가 이백겸 의병장이 패전하자 강필주(姜弼周)로 하여금 대항케 하는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0월 20일 무장(茂長) 장자산(莊子山)에서 전투 중 강필주가 전사하고, 이대극이 퇴군한 후 1909년 4월 3일 순국하게 되자 스스로 의병진을 수합하여 의병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910년 1월 영광(靈光), 백양산(白羊山) 등지에서 많은 전투 성과를 거두었으며 본진영과 합류하여 대혈전을 벌이던 중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1910년 1월 28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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