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和容
(188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和龍, 李化溶, 李元喆, 李和用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화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화용은 일찍부터 한국 독립을 갈망했던 인사였다. 1920년 7월 10일 의군단에 가입하여 모연대원이 되었다. 8월에는 모연대장 신호영과 함께 간도 화룡현 함락동(咸樂洞) 외 네 곳의 촌락을 다니면서 한국인 수십 호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9월 8일에는 역시 신호영 등 모연대원들과 함께 권총과 장총 등으로 무장한 채 함경북도 무산군 양수동(梁水洞) 김태산(金泰山)의 집에 갔다. 그곳에 숙박하고 있던 정일천(鄭日天)·나카오(中尾廣吉) 등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이화용은 1921년 6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