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和翊
1871-09-06 ~ 1933-09-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화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13일 경북 울진군 부흥(復興)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경북의 인근지역들은 3월 중순부터 만세운동을 일으켰던데 비해, 울진은 지리적으로 태백산맥 동편에 위치하여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만세운동의 소식을 늦게 접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이화익은 뒤늦게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4월 초부터 울진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해 갔다. 그는 김광수(金光壽)·남병모(南炳貌) 등과 4월 13일 부흥 장날을 기해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에 이화익은 부흥 장터에 운집한 수백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시위행렬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그는 마침 출장중인 울진군수 강성희(姜星熙)가 시위를 해산하려 하자, 오히려 군수에게 한국인으로써 최소한의 민족적 양심을 지킬 것을 주장하여, 군수로 하여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만세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위 도중 그는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붙잡혀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소위 공무집행 방해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5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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