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敬鎬
1888-03-03 ~ 1945-02-1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號:聲百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경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청양(靑陽) 사람이다. 임한주(林翰周)의 조카이며 한말 의병장 김복한(金福漢)의 문인이다. 1919년 김복한·김덕진(金德鎭)·안병찬(安炳瓚) 등 호서지방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목적으로 일제의 죄상을 폭로하고 조국독립의 열망을 담은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자 임경호는 독립청원서의 발송책임을 맡아 황일성(黃佾性)·이영규(李永珪)·전용학(田溶學) 등과 함께 발송을 준비하였다. 한편 영남지방의 유림들도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이중업(李中業)을 중심으로 같은 목적의 독립청원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는 유진태(兪鎭泰)의 소개로 김창숙과 만나 양측의 목적이 같음을 확인하고 영남측의 준비에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호서·영남지방 유림 137인이 서명한 독립청원서가 확정되었으며 김창숙은 이를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였고 국내 각 향교에도 우송하였다. 이때 그는 독립청원 이후의 국내활동과 국외연락에 대비하여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지 않고 후진으로 남아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국산품 애용을 통한 민족자본의 양성과 민족자립을 목적으로 1923년 1월에 결성된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에 참여하여 20명의 이사 중 일원으로 선전부에 소속되어 동회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23년 7월 이종린(李鍾麟)·송진우(宋鎭禹) 등 6명의 동지와 함께 동회의 기관지 발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동년 11월 기관지 ≪산업계(産業界)≫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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