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謹鎬
1918-06-30 ~ 1964-10-1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근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7년 3월 강원도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春川公立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상 록회(常綠會)에 가입하여 독서회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7년 3월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 4년생 남궁태(南宮?), 이찬우(李燦雨),문 세현(文世鉉), 조규석(曺圭奭), 용환각(龍煥珏) 등이 교내외의 의식분자를 획득 하여 조선독립의 실천운동을 꾀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상록회를 조직하였다. 이 후 이들은 운동의 확충을 위해 동회의 독서부(서적부)를 확대·강화하여 독서회 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 내에 존치시켜 의식교양을 지도 하는 중앙기관으로 삼을 것을 결의하였다. 임근호는 이찬우의 권유로 동회에 가입한 뒤, 동년 4월 15일 용환각, 이찬우, 배근석(裵根錫), 이풍섭(李豊燮), 이 병주(李炳柱), 조흥환(曺興煥), 박규원(朴珪源) 등과 회합하여, 남궁태, 조규석 이 기초한 독서회 조직 계획안에 대하여 협의하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임근호는 상록회의 을조(乙組) 조직원 29명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반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37년 11월 을조대의 노래 를 작사·작곡하는 데 관여하였으며, 1937년 12월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 기숙사 뒤 언덕에서 회원들과 회합하여, 민족주의를 표상하는 육체로 한반도의 모양을 나타내는 사진을 촬영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39년 1월 25일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제1조 결사가입(結社加入) 위반 으로 인치되어 1939년 5월 13일까지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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