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度準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도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임도준은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 육군조장(陸軍曹長)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1920년 중국 간도(間島)에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참여하여 제3대대장과 서무부장(庶務部長)을 역임하였다. 북로군정서는 1919년 10월 만주에서 편성된 독립군 단체로 총재 서일(徐一)과 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이 지휘하였다. 이들은 1919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1920년 2월 초에 북간도 왕청현(汪淸縣) 서대파(西大坡) 십리평(十里坪)에 병영을 짓고 연병장을 닦아 근거지를 설치하였다. 북로군정서는 신민회의 방식에 따라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여 교관 이범석(李範奭)과 졸업생 장교 백종렬(白鍾烈),오상세(吳祥世),김훈(金勳) 등을 비롯한 다수의 훈련장교들과 각종의 교재를 공급받았다. 그리고 약 1,100여 명의 장정을 모집하여 그 중 우수한 청년 300여 명을 선발하여 사관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들은 이후 전개된 일제와의 전쟁, 즉 청산리전투 승전의 주역이 되었다. 임도준은 북로군정서의 제3대대장으로 왕청현 춘명향(春明鄕) 대감자(大坎子)에서 활동하였고, 1921년에는 서무부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임도준은 1922년 대한혁명단(大韓革命團)에서 설립한 무관학교(武官學校)의 교장을 맡아 생도들을 교육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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