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東默
1910-11-08 ~ 1962-12-01·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동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학생과 광주중학교 일인 학생의 쟁투를 계기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지지하는 동조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청주공립농업학교에서도 1930년 1월 21일 동조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아침 조회 이후 130여 명의 학생들이 “조선 민족들이여 자각하라! 우리 2천만 동포의 자유를 얻기 위해 만세! 만세!” 등이 기재된 수천 매의 격문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치며 시위를 단행하였다. 시위는 인근의 청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수백여 명과 연합시위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학교 밖으로 진출하여 서로 합류한 후 시내에서 시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주도 학생 등 50여 명이 체포되었다. 청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동묵은 이 시위에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학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4일 검사국에 송국되었으나, 14일 기소유예로 출옥하였다. 재감 중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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