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白允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백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다. 임옥여(任玉汝)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남부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당시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에 임백윤은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음력 8월 임옥여 의진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경기도 광주·여주(驪州)·용인(龍仁)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9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7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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