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炳大
1869-05-19 ~ 1936-09-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병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정읍(井邑) 사람이다. 1906년 임병찬(林炳瓚)의 동생으로 최익현(崔益鉉) 의병진에 가담하여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을사조약의 늑결과 더불어 면암(勉菴) 최익현이 의병 거의를 위해 태인(泰仁)에 도착한 것은 1906년 3월 24일이었다. 이때 임병대는 전 낙안군수(樂安郡守)인 형 임병찬과 함께 거의를 위해 태인에 집결하였고, 그밖에 100여 명의 유림 인사들이 모였다. 이들은 같은 해 4월 13일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를 열어 의병을 창의하였다. 이때 임병대는 최익현 의병진의 참모를 맡았다. 창의 후 이들은 태인읍을 점령하고, 각지의 군사들을 모아 의병 대열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4일 정읍으로 진군하고, 4월 16일에는 순창으로 진군하여 무장을 강화하니 의병은 600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관군이 의병 해산을 종용하는 과정에서, 면암이 관군과의 싸움을 포기하게 되자 의병부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그후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던 임병대는 3·1운동 후 1919년 서울에서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 조직되고 정읍지방에 지부조직을 설치하며 조카 임응철(林應喆)이 정읍의 책임자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동단에 가입하여,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그는 1920년 초 대동단이 발각될 때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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