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炳燁
(1860) ~ 1908-08-25·조선
이명·자·호 林先達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병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본적은 미상이나 전남 순천군(順天郡) 쌍암면(雙岩面) 쌍암리(雙岩里)에 거주하였다. 임병엽은 선달(先達)로서 1882년 2월부터 1886년 4월까지 경성진위대(京城鎭衛隊)에서 근무하였다. 1907년 9월 진위대(鎭衛隊) 해산 이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중, “크게 국가의 위급을 맞이하여 (중략) 이러한 국난을 맞이하여 의기를 일으키는 것은 장차 우리들 국민의 진력을 다할 의무이다”라는 의병장 조규하(趙圭夏)의 의견에 찬동하여 전남 순천(順天)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양인은 순천·동복(同福)·보성(寶城) 등지에서 30∼5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08년 6월 의견 충돌 결과 부하를 배분하여 부대를 분리하였다. 그 후 임병엽은 동복군 모후산(母后山) 부근에서 활동하다가 동년 8월 18일 체포되어 동년 8월 25일 낙안군(樂安郡) 우산촌(牛山村)에서 탈주를 기도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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