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炳禧
(187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병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평산군(平山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산군에서 만세운동은 3월 7일 시작되었다. 이날 헌병의 발포로 수 명이 희생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울분을 느낀 평산의 군민들은 3월 30일 읍내의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라는 전단을 붙이고, 헌병 주재소와 군청 게시판 및 군청 문 앞에 태극기를 붙이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는 수백 명의 군민들이 장터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양 시위에서는 일경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다음날인 4월 1일 한포리와 기린리에서는 수백 명의 군민들이 주재소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임병희는 오랜 역사와 고매한 민족정신을 가진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것을 치욕으로 여겨 독립을 갈망해오던 중 민족자결주의가 독립의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하고 4월 1일 인산면 기린리에서 군민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임병희는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상해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