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福姬
(1914)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복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많은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동조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에서도 1930년 1월 20여 개 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각 학교의 대표학생들은 1월 15일 일제히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종로 네거리에 집결한 후 연합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정신여학교에서도 하운학(河雲鶴)을 중심으로 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2학년에 재학하던 임복희는 이경애(李敬愛) 등 학우들과 격문 30여 매를 제작하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약속된 1월 15일 10시 30분경 정신여학교 학생들은 일제히 교실을 나와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경찰의 저지로 실패하자 통곡하며 저항하였다. 학생들은 교정에 집결하여 목놓아 만세를 불렀으며 이 과정에서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은 연합시위를 위해 가까운 경신학교로 향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였다. 임복희는 이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학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월 17일 이른바 ‘경찰범처벌규칙 위반’으로 구류 25일을 받고 12일간 고초를 겪었다. 학교에서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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