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鳳鎬
1918-10-13 ~ 1999-11-12·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봉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순창(淳昌) 사람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중 1939년 4월에 정주영(鄭周泳)·박도병(朴道秉) 등과 함께 항일학생결사 「한글연구회」를 조직하였고 한다. 처음에 동회는 20여명의 학생을 회원으로 규합하고 한글을 연구하는 한편 민족독립의 방략으로 농민계몽에 힘을 쏟아 야학을 개설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원고농생의 항일정신의 본산인 한인기숙사 동료(同僚)를 중심으로 항일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는 1940년 3월에 졸업한 후에도 동회의 목적을 달성키 위해 동지들과 시국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였고, 또 한글보급 등의 활동을 펴면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동회원이었던 김중면(金重冕)이 졸업 후 함북 갑산(甲山)농업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는데 이로 인하여 한글연구회의 조직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 세칭 수원고농의 한글연구회사건 또는 제3차 고농 사건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때 그도 1941년 9월에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3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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