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尙熙
1888-12-25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Sang Hee Yim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상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88년 12월 25일 충청남도(忠淸南道)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상옥리(上玉里)에서 태어났다. 1917년 7월 20일 차이나 선편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왔고, 중부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 17일 다뉴바 한인교회에서 공동대연설회를 개최할 당시 42명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윤병구(尹炳求)의 발의로 조직된 시사연구회(時事硏究會)에 참여하였다.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다가, 동향 출신인 송철(宋哲)과 함께 동지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9일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를 위한 동지회 북미총회에서 서기로 선임되었다. 1944년 10월 1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전체대표회를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에서 개최하였다. 이날 전체대표회에는 하와이 의사부 대표들이 참석하지 못해서 비공식 토의회를 개최했는데, 임상희는 전체대표회 준비를 위해 동지회 북미총회 대표로 참여하였다. 1945년 5월 임상희를 비롯한 임병직·김진목·이범녕·송헌영 등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 북미총회의 임원들은 중가주지역 한인들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의무금, 독립의연, 인구세, 독립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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