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錫龍
1860-11-1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석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임석룡은 황해도 수안군(遂安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해도에서도 동부 산악지대에 속하는 수안, 곡산(谷山) 등지에는 일찍부터 천도교가 많이 전교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곳의 3·1운동 역시 천도교인들에 의하여 계획되었고, 또한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과감하게 전개되었다.서울에서 3.1운동이 펼쳐지는 그날,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에 의하 여 서울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에 관한 연락이 수안읍의 천도교 교 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전하여졌으며, 여기서 수안군의 만세시위에 관한 계획 은 급속히 진행을 보게 되었다. 3월 3일 다수의 천도교인들이 읍내 천도교 교구 실 앞으로 모이고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헌병분견대 쪽으로 나아갔다. 3 월 7일에도 수구면(水口面) 석달리(石達里) 홀동(笏洞)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 위를 하며 헌병주재소의 공격을 기도하고, 9일에도 석달리 주재소에 약 1백 50 명의 군중이 몰려갔다. 시위 후 체포된 임석룡은 1919년 10월 20일 경성지방법원 철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