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行叔
(186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任行叔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임행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기도 여주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 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임행숙은 이같은 시기에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00여 명의 부하 의병을 이끌고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경기도 여주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1907년 11월 1일 여주군 흥곡면(興谷面) 충신동(忠信洞) 산속에서 여주경찰서 소속 일본인 순사 도변권태랑(度邊卷太郞)·복도영태랑(福島榮太郞)·족전장(足田章) 및 부일협력자 김한영(金漢永) 등 4명을 처단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