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康煥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강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안협면(安峽面) 안협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10일 안협시장의 만세운동은 서면(西面) 축동리(軸洞里)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축동리의 주동 인물은 천도교인 장강환과 김응순(金應順), 그리고 서당 훈도였던 박용의(朴容義)였다. 장강환 등은 마을 주민을 동원하는데 구장이던 송원흥(宋元興)의 도움을 빌었다. 장강환 등이 10일 안협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일으키기로 협의하자, 9일 밤 송원흥은 각 구장들을 동원하여 집집마다 거사계획을 알렸다. 주민을 동원하는 데는 구장이 앞장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0일 장강환을 비롯한 축동리 주민 70여 명은 안협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장꾼을 독려하면서 만세를 높이 외쳤고, 박용의는 태극기를 높이 세우며 시위 행진을 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장강환은 1919년 9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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